IUM MAGAZINE

SINGLE / Nov, 2017

소울 인 서울 #4 서촌

소울 인 서울 #4 서촌

가을은 홀연히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돌아보니 눈부셨던 계절은 저 언덕 너머로 사라지고 바람은 차가웠다 덜 차가웠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타이밍을 잘못 맞추기라도 한 날엔, 나 혼자 계절을 착각해버린 차림이다. 코 끝이 찡하게 아려오는 찬 바람, 가을도 이제 끝인가. 시린 코를 힘차게 비벼 보지만 좀처럼 따뜻해지지가 않는다. 이 계절의 거리 위에선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채울 것이 필요하다. 몸과 마음을 채우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 오롯이 혼자, 서촌으로.  


하나, 서촌에서 마음 채우기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혼자 놀기엔 서촌 만한 곳이 없다. 작은 갤러리들이 옹기종기 모인 이곳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통인시장만 한 바퀴 구경해도 반나절은 훌쩍 지나갈 테니.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마을이다. 굳이 구역을 나누자면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의 서쪽 사이, 청운 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여기서 여기까지가 서촌이라고 선을 긋기는 어렵다. 안국동, 삼청동을 포함하는 북촌과 대비해 서촌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뿐.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을 나와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이름 모를 미술관과 전시관, 문을 닫은 책방과 간판이 흐려진 카페, 그리고 옛 문학가들의 발자취가 남은 터전들이 얼기설기 엉켜있다



|보안여관


통의동 보안여관은 80여년의 세월 동안 찾고 떠나는 나그네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했다. 1936년 시() 동인지 <시인부락>이 시작된 곳이자 서정주 시인이 하숙을 했던 곳, 김동리, 오장환, 김달진 시인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긴 세월 동안 많은 문학인들이 머물렀다 떠난 이 곳은 2007년 생활밀착형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이후, 지금까지도 문화생산 아지트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보안여관이라는 간판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이 건물 속으로 들어가면 마치 타임슬립을 한 듯 고스란히 과거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삭아가는 과거의 벽지와 목조 뼈대 속에 현재의 이야기들이 전시되어 묘한 감동을 안긴다



|윤동주문학관


<별헤는 밤>의 시인 윤동주의 정신을 기리는 윤동주문학관은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들어졌다.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흐르게 하는 가압장처럼, 이곳에 들어서면 멈추어 있던 정신이 깨어나는 진귀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문학관의 내부는 생각보다 조촐하다. 시인의 친필원고와 함께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제1전시실을 지나면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중정(中庭), 2전시실이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면 영상물을 상영하는 제3전시실에 도달하는데, 미처 몰랐던 윤동주의 일생과 시 세계를 단 10분만에 감상할 수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꼭 감상해 보기를 추천한다. 문학관의 뒤편엔 시인이 오르내리며 시상을 떠올렸다는 산책로가 있다.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며 산책을 즐겨도 좋을 듯.



|이상의 집


이상의 시를 처음 접한 사람은, 아마 누구나 비슷한 충격을 받았으리라. 초현실주의 문학의 선구자. 대한민국 문학사에서 이상은 천재광인’, 그러나 불운한 개인사로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오감도>, <날개> 등 그의 대표작들은 난해, 위트, 아이러니, 언어유희 등 평범하지 않은 수식들로 대변되곤 한다. 현재 서촌에 남아 있는 이상의 집은 그가 21년간 살았던 통인동 154번지의 집터 중에 일부다. 이곳에서는 이상의 작품집을 무료로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천재 작가가 작품을 써 내려간 바로 그곳에서, 남다른 시인의 작가정신을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 서촌에서 몸 채우기

 

매주 수요일, 우리나라에서 미식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원탁 테이블에 둘러 앉아 맛을 논하는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서촌은 무려 열 번이나 거론됐다. 국밥부터 찌개, 딤섬, 훠궈, 판콘토마테, 파스타까지 국경도 다양한 메뉴들이 이 미식회를 통해 등장했는데, 기왕지사 서촌을 방문했다면 가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열 가지의 메뉴 중 세 가지를 골랐다. 그리고 그 맛은 모두 (미식회에서 추천한 메뉴에 한해) 엄지를 치켜 올릴 정도로 탁월했다.   

|인왕식당: 소고기국밥


전통은 배신하지 않는다. 한 자리에서 30여년 간 영업한 인왕식당에서는 오직 소머리국밥과 제육볶음 두 가지의 메뉴만을 판매한다. 깔끔하고 순한 국밥보다도 더 인상적인 건 밑반찬으로 함께 나온 곁들임 음식까지도 완벽하게 맛있었다는 것!

|포담: 딤섬


진하고 고소한 고기 육즙이 적당한 두께의 만두피 사이로 터져 나오는 광동식 수제 딤섬의 맛을 볼 수 있는 곳. 입 안에 넣고 한 입에 터뜨려 먹거나, 접시에 놓고 젓가락으로 조금 찢어 흘러 나온 육즙을 먼저 마셔도 좋다.    

|스코프: 브라우니


영국인이 직접 만든 영국식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곳. 요리연구가 홍신애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초콜릿이라고 표현한 스코프의 브라우니는 꾸덕진브라우니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디저트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빼놓지 말아야 할 필수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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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Ju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