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UM MAGAZINE

LOVE / Oct, 2017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여자에게는 최근 독특한 친구가 하나 생겼다. 전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와 친밀한 관계가 된 것이다. 사연은 이랬다. 여자는 지난 가을 우연히 모임에서 만난 남자와 만남을 시작했다. 두어 번의 만남 이후에 시작된 연애. 사귀기로 결정한 그 다음날부터 그 둘은 연인이 되었지만, 사실 서로를 알게 된지도 사귀게 된지도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낯선 사이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여자는 자신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종류의 일들을 겪게 된다. 어느 날부턴가 시작된 남자의 집착, 욕설, 폭력.

 

곧 이별을 결정하고 남자에게 헤어짐의 의사를 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부터 남자의 스토킹이 시작됐다. 혼자 사는 여자의 집앞으로 찾아오고 문을 열어주지 않자 난동을 부리고, 여자의 회사에 전화를 걸고 부모님의 집에까지 찾아왔다. 부모님의 직장을 알아내 찾아간 일도 있었다. SNS를 통해 알아낸 여자의 친구들, 학교 선후배, 주변 지인들, 심지어 여자의 전남자친구들에게까지 메시지를 보내는 등 그는 집요하게 여자를 괴롭혔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찾아와서 괴롭히는 건, 어찌 됐든 경범죄 수준의꽤 흔한 일이었으므로 경찰도 달리 해결해 줄 방도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괴롭힘을 당하던 여자는 우연히 남자의 이전 여자친구와 연락이 닿게 된다. 남자의 전 여자친구인 X는 여자에게 먼저 만나기를 청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여자는 자신이 남자에게 당한 일들이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되어 온 일임을 알게 되었다. 남자는 폭행, 강간, 스토킹 등으로 이미 여자들에게 고소당한 전례가 많은 범죄자였고 오랜 기간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일이 있는 정신질환자였다. 남자의 실체를 모르고 연애를 시작했던 여자들은 전부 남자에게 극심한 괴롭힘을 당했고, 남자를 고소하거나 혹은 여자 쪽에서 아예 종적을 감추는 것으로 관계는 끝이 났다.

 

그의 전 여자친구는 자신이 과거에 그에게 받았던 욕설 문자 등을 보여주었는데, 그가 여자들에게 보낸 문자들은 욕설의 토씨 하나까지도 전부 꼭 같았다. 여자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괴롭히고 지인들을 찾아내거나 여자의 전 남자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는 것도 늘 똑같은 패턴이었다.

 

어쨌든 이 만남 이후 여자는 비로소 고통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대체 이런 일이 왜 나에게 일어났을까, 섣불리 잘 모르는 남자를 만난 것에 대한 자책으로 괴로워하던 여자는 남자의 전 여자친구를 만난 이후 비로소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주변에 털어놓기도 힘들었던 이야기를 누군가와 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후련하다고도 했다.

 

한 남자에게 같은 시련을 겪은 두 여자는 이내 친구가 되었다. 같은 고통을 겪었으니 동병상련이 절로 생겼으며, 먼저 겪은 이는 나중에 겪은 이에게 조언과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같은 한 남자를 사귀었던 여자들. 친구가 될 일로 될 리도 없는 사이이건만, 둘은 그 일이 지나간 이후에도 서로 마음을 터놓는 관계가 되었다. “그 놈의 취향이 분명해서인지 우리 둘은 성향이 너무 비슷하고 잘 맞는다는 우스개도 주고받는다고 한다.

 

최근에 또 다른 이야기도 하나 듣게 되었다. 전 남자친구와 친구가 된 여자의 이야기였다. 사귀다 헤어진 뒤 친구로 지낸다는 건 사실 그리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저 멀리 바다 건너 그 쿨한 문화권까지 가지 않더라도, 헤어진 뒤 친구 혹은 좋은 선후배로 지낸다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자주 들려오곤 하니까.

 

그런데 여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내 반응에 정색을 하며이건 진짜야하고 강조했다. 그 남자와진짜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럼 다른 건 가짜였냐며 웃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전에도 헤어진 남자친구와 친구로 지내기로 결정하고 이별 후에도 종종 연락을 주고 받으며 지내보기도 했지만, 그건 다 가짜였다는 것이다. 그냥 바로 연락을 끊기가 아쉬워서였고, 헤어진 뒤 찾아 올 쓸쓸함과 외로움이 두려워서였다. 사귀는 것도 아니고 사귀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로 애매하게 남겨두고 외로울 때마다 연락해 서로 만나곤 했지만, 그 애매한 비겁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저 편리하게 친구라는 이름을 붙여두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관계는 한쪽에서 완벽히 정이 떨어지거나 둘 중 누군가에게 새로운 사람이 생겼을 때 바로 깨지곤 했다며 그녀는 말했다.

 

 그게 무슨 친구니?”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럼 이번에는 뭐가 다르냐고 했더니, 그 남자와의 관계는진짜 친구로 분류될 만한 조건들이 꽤 있다고 했다. 우선 이성으로 느껴지는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사귀었던 사람인데 어떻게 이성으로 느껴지는 마음이 전혀 없을 수 있느냐고 묻자, 사실은 그런 마음이 사귈 때도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여자로서 남자에게 끌리는 뜨거운 마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또 동료로서 좋아하는 마음으로 그와 사귀었다. 애초에 그냥 친구로 지냈어도 좋았겠지만, 삼십대의 남녀가 만나 그저 친구로만 가까이 지내게 되지 않아 자연스레 연애로 이어진 거라고 했다. 이성으로 끌리던 마음은 연애가 끝나면 사라지고 말지만, 사람으로서 좋아했던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그와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녀가 말하는 사귀던 연인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조건은 이랬다. 이성으로서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좋아하는 구석이 있는 것. 사랑했던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성적인 마음이 없었고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없는 상대라면, 상대가 새로운 연인을 만나더라도 서운함이 없고 내가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그와 연락하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없다. 그런 한편 인간으로서는 좋아하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연인이라는 관계가 끝난 이후에도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녀의 설명은 이랬다.

 

내가 아는 영국인 친구 하나는 외국에 갈 때마다사랑친구가 그 나라말로 무엇인지부터 배운다고 했다. 언어는 곧 문화이기 때문에, 어떤 언어에는 있는 단어가 다른 언어에는 개념조차 없기도 하다. 그러나사랑친구라는 단어는 어느 언어에나 어느 문화에나 존재한다. 어쩌면 인간이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추상적인 개념 두 가지가 사랑과 우정인지도 모르겠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사전에는친구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그런데 말에 대한 정의와 함께, 친구 관계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덧붙이는 말들이 많이 존재한다. 남녀 사이는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든지, 사귀던 사이는 다시 친구가 될 수 없다든지 하는 말들. 우리나라에서는 친구관계는 나이가 서로 같아야 성립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절대 안 된다 거나 꼭 그래야 하는 건 무엇도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친구 관계는 무엇이라고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친구가 됐으면 이미 친구인 것. 그냥 그게 친구인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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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담

editor Ju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