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UM MAGAZINE

LOVE / Dec, 2016

우리 사이에 이름을 붙여야 할까

우리 사이에 이름을 붙여야 할까

여자는 그 남자 J를 홍콩에서 만났다. 부서 발령으로 급작스레 온 홍콩이었다. 한 달여의 시간을 새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그래도 홍콩에 왔는데 주변은 돌아봐야지 싶은 생각에 찾아 간 피크 타워. 홍콩의 야경이 실컷 내려다보이는 피크 타워의 꼭대기에서 여자는 남자 J를 만났다.

 

여자가 자신의 모습을 야경의 한 가운데 담아보려 이리 저리 움직이던 셀카봉을 두고 이게 대체 무어냐 유쾌하게 깔깔대던 그는 독일인이었다. 여자는 첫 눈에 그 남자가 좋았다


둘은 그 날 같이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는 맥주도 마셨다. 맥주를 마시고도 헤어지지 않았다. 그 날 이후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고 또 주말이면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그렇게 몇 주가 흘러갔다.

 

연인이 아닌 남자와 데이트 하고 스킨십을 나누는 일이 지금껏 없던 여자였지만, 그곳이 홍콩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인지, 혹은 그에 대한 마음이 전에 없이 강렬했기 때문이었는지. 남자가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 섭섭하기도 했지만,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여자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던 중 어떤 저녁여자는 남자와 술을 마시다 네가 내 보이프렌드는 아니잖아하며 웃었고남자는 정색하며 아니었어하고 물었다그 말에 도리어 어리둥절해진 여자에게 남자는그럼 너는 나를 남자친구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주말마다 데이트하고 그런 시간들을 보내온 거냐고 반문했다여자는 그제야 알았다외국에는 우리 식의 '오늘부터 1일 선언문화가 없다는 사실을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자우리가 사귄다는 사실에 ‘declaration’이 필요한 거였냐며 남자는 웃었다생각해보니 그게 꼭 필요치는 않은 것 같다며 여자는 따라 웃었다.

그 날 밤 여자는 생각했다. 아무런 의문도 없이 지금껏 너무나 당연한 절차로 여겨온 남자로부터의 "사귀자. 우리 오늘부터 1일이야" 선언, 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하여. 돌아보니 여자는 서너번의 ‘공식적인’ 연애를 했지만, ‘남자친구’ 라는 같은 이름을 부여받은 이들의 존재감도 역할도 그들에 대한 마음도 모두 달랐다. '오늘부터 1' 선언으로 공식적인 연인이 된 이들 중에는 실상 단 하루도 연인이었던 적이 없던 이도 있었다. 그저 의미없는 카운터만 딸깍 딸깍 올라갔을 뿐. 그러나 J와 보낸 홍콩에서의 날들에서, 그녀는 그와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녀의 연인이었고 지금껏 누구와도 그만큼 뜨거운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부터가 1일이냐든지 우리가 무슨 사이냐든지 정의를 내리는 일에 왜 그토록 집착했을까. '승인'은 누구로부터 받는 거고 그 '선언'은 누구를 위해 필요한 거였을까.


여자는 다음 날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일련의 이야기를 했다. 친구가 덤덤하게 말하기를, "몰랐어? 외국애들은 그런 거 없어. 자연스럽게 데이트하고 관계에 대한 정의는 그냥 이후에 따라가는 거지. 난 이 편이 좋은 것 같아."

 

그럼 우리는 대체 왜 그리 선언에 집착해온 거냐고, 너도 나도 이십대 초반에는 남자가 왜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을까, 이 남자와 언제부터 사귀게 될까를 두고 조마조마해 하던 아이들이 아니었냐고, 여자는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아마 여성인권 탓이 아니겠냐는 답을 내놓는다. 여성인권이 비교적 높은 서구에서는 여자들이 그냥 좋으면 데이트하고 자신이 원하면 스킨십도 하기 때문에, 이 관계가 공식적인 연애 관계인지에 그리 집착하지 않는단다. 그러나 여성인권이 낮으면 은연중에 관계의 주도권이 남자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그다지 원치 않는 스킨십도 사귀는 사이라면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혹은 자신이 원해서 한 스킨십이어도 사귀는 관계가 아니라면 남자가 나를 쉽게 보는 것이 아닐까 안절부절하고. 여성인권 탓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이 문제를 논하면서 여성인권까지 나와야 하는 건가, 머리가 복잡해진 여자는 그럴듯한 얘기인 것 같다고 얼버무리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러나 머리속으로는 ‘관계에 이름을 붙이는 것’의 의미를 찾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주말 즈음이 되자, 여자는 그게 갖는 의미를 단 한 가지도 찾을 수 없어 난감해졌다. 오히려 그 일에는 부작용만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오늘부터 1일” 선언과 함께 ‘남자친구’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여자는 늘 남자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다. 남자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데리러 와주길, 만남 후에는 언제나 집에 데려다주길, 자기 전에 전화해주길, 내일 아침 일이 있어도 늦게까지 이야기 나눠주길 여자는 기대했었다. '남자친구'라는 이름이 붙은 존재는 그래야 하는 것으로 그렇게 알았으니까.

 

그러나 남자 J에게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 그는 그냥 그이고 나는 그냥 나이므로. 그와는 보고싶을 때 만나고 헤어지고 싶을 때 헤어지고 연락이 없으면 바쁘구나 생각하고 그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거나 집에 데려다줄 때면 그게 마냥 좋고 기뻤다. 그게 전혀 당연한 게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오늘부터 1일 선언’이 있었으니 남자친구라는 이름은 붙어있었지만, 실상 사귀는 중 단 하루도 뜨겁지 않았던 관계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마음이 뜨겁지 않았음에도 그에 대한 여자의 기대는 같았다. 그건 그에게 바란 것이 아니라 그냥 ‘남자친구’라는 타이틀이 부여된 모든 이에게 여자가 기계적으로 바라는 것들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비단 남녀 관계만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가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들에 붙은 이름 중, 그 관계는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고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관계는 하나도 없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도 집집마다 다르다. 어떤 부모자식 간에는 더없는 존중이 오가지만 어떤 부모자식은 서로에게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관계에 붙은 일률적인 '이름' 탓에 이 관계는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고 믿고 그 관계에 수없이 많은 기대를 품는다. 부모란 이름이 붙은 것은 나를 위해 희생해야 하고 자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나의 뜻에 따라야만 하고. 형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러해야 하고 친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러해야 한다고 그렇게 철썩같이 믿는다.

 

그러나 실상 두 사람의 관계에 붙은 '이름'은 어떤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너와 내가 있을 뿐이다. 둘로 이뤄진 세상 모든 관계는 그저 '000000의 관계'일 뿐. ㅇㅇ관계, ㅇㅇ관계라는 식의 세상이 일괄적으로 정해놓은 이름으로 특정될 수 없다.

 

여자에게는 '친구'라는 이름를 가진 여자가 하나 있다. 그 관계에 붙은 이름은 '친구'인데 생각해보니 두 여자의 관계는,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따르자면 '자매'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한 사람이 힘든 일을 겪으면 같이 '울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똑같이 눈물이 날 지경이 되니까. 하나가 불행하면 그저 안쓰러운 것이 아니라 나도 어느 정도는 같이 불행하다고 여겨지니까. 그렇다고 두 여자가 자매인 것은 아니다.

 

여자에게는 역시 '친구'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도 하나 있다. 그는 그녀가 잊은 그녀의 역사까지 샅샅이 지켜본 사람이다. 여자 자신은 이제 다 잊어버리고만 지난 고민들도, 술기운을 빌려 내뱉은 푸념들도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 관계에는 '친구'라는 이름보다 '목격자'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여자는 그런 생각도 하고 있다.

 

여자에게는 '아버지'라는 이름이 붙은 남자도 있는데, 여자는 그 남자와 지금껏 단 한 번 만났다. 딱 한 번 만난 관계에 ‘부녀’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여자는 생각한다.

 

'어머니'라는 이름이 붙은 여자도 있는데, 여자는 어른이 된 후 그녀와 자주 술을 마시고 종종 함께 담배를 태운다. 따로 살며 가끔 같이 여행을 떠난다. 여자가 나고 자란 나라의 정서라는 놈을 생각하면, 이 관계에 '모녀'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좀 무리가 아닐까, 여자는 생각한다. 오히려 아까 어디에 붙여도 어색했던 그 '친구'라는 이름이 여기에는 비교적 가장 어울린다고도 생각해본다. 그러나 물론 두 여자가 친구인 것은 또 아니다.

 

그러니 나는 내가 살아가면서 맺는 관계들에 굳이 이름을 붙여 명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냥 세상에 각각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J와 나의 관계로, H와 나의 관계로, Y와 나의 관계로, K와 나의 관계로 생각하며, 그저 그 관계를 어떤 이름으로도 옭아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굳이 끌어안고 부질없는 기대를 쏟아붓는 일 따위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도, 어쩐지 그 여자의 생각이 맞는 것 같다



Article by I 정담 
MAXIM 칼럼니스트. 국어를 말하는 일, 쓰는 일, 가르치는 일로 밥벌이를 한다.
아나운서, 기자, 리포터, 모델, 학원강사, 백수, 폐인 등의 직업을 거치며 겪은 인생의 고초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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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정담

editor Ju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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